스토아학파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고, 행복은 자연에 따라 살아가는 데 있다고 본다. 이때 자연이란 이성적인 것, 혹은 이성 그 자체이므로 자연에 따르는 삶은 곧 이성적인 삶이다. 스토아학파에 따르면, 이 세계는 이성적인 전체이며, 자연 또는 신과 동일시할 수 있다. 또한 전체 속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일은 신의 법칙, 즉 이성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신적 이성을 나누어 가지므로 자연을 지배하는 이성의 법칙을 이해하고 자연의 모든 일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토아학파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적 이성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것으로서 바꿀 수 없고, 또한 최선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녀야 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운명에 순응하고 운명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덕과 악덕, 행복과 불행 등을 포함한 자연 안의 모든 일이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덕과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스토아학파는 우리 내면에 의지와 자유와 이에 근거한 지혜 · 용기 · 절제 · 정의의 덕이 있다고 주장한다. 외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므로 우리의 의지대로 변화시킬 수 없지만 내면의 동기나 의지는 조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과 일치하고자 하는 한 우리의 동기나 의지는 선한 것이고 덕 있는 것이며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 정념(감정, pathos)이 이성을 가리면 자연을 따라 살아가기보다는 육체 · 재산 · 평판 · 권력 등 외적인 것에 관심을 쏟고 비이성적인 기쁨 · 슬픔 · 욕망 ·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정념이란 이성에 복종하지 않는 과도한 충동 또는 비이성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영혼 안의 움직임으로, 정념은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방해하고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스토아학파에서는 정념에서 벗어난 상태인 부동심, 즉 아파테이아(aparheia)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토아학파가 모든 정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거나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같이 비교적 자연스러운 정념은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어떤 정념이든 초연하게 대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토아학파는 전체가 먼저 있고 개체는 전체의 부분으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개인은 세계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간다고 본다. 그래서 전체가 온전할 때에만 개인의 삶도 온전하고 행복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인류를 위해, 우주를 위해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스토아학파 윤리 사상의 한계와 영향
스토아학파는 정념에서 벗어나 이성에 따르는 삶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해 주는 감정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자연의 전개가 필연적이라는 세계관과 인간 내면의 자유를 인정한 관점은 양립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스토아학파에 따르면,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정되어 있으므로 우리를 선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행위를 통해 성취한 결과가 아니라 행위를 하는 우리의 동기나 의지이다. 또한 자연과 이성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이 의무를 다한다면 그 결과에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다. 이처럼 의무 자체를 위해 행위한다는 스토아학파의 의무 개념은 칸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자연 안의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고 인간은 정념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견해는 스피노자의 사상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스토아학파는 세계 시민주의와 자연법사상을 주장하여 로마의 만민법과 중세 및 근대의 자연법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스토아학파가 내세운 세계 시민주의는 모든 사람은 공통된 이성을 가진 형제이므로 모두 평등하다는 주장이고, 자연법사상은 신적 이성이자 자연의 본성에 따라 성립된 자연법에 법의 원천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