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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 아퀴나스의 사상과 종교개혁 그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으로 전파된 이후 인간, 세계, 신의 본질, 인간의 행복과 윤리적 원리 등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다루었던 철학적 문제에 답하면서 체계화되었다. 특히 그리스도교 신학의 기틀을 닦은 교부들, 그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사상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맞추어 완전한 신이 다스리는 천상의 나라와 불완전한 인간이 사는 지상의 나라를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지만, 육체를 지니고 욕망에 따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서 신이 부여한 자유 의지로 행동하지만, 결국 죄를 짓고 만다. 따라서 죄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인간에게는 최고의 행복이고 구원이며, 신은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선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만든 이 세상에 죄와 악이 존재하는 까닭과 인간이 타락하는 까닭을 탐구하였다. 그 결과 악은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여이며,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이성과 의지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는 플라톤과 달리 덕뿐만 아니라 신의 사랑과 은총이 있어야 인간이 정의롭고 행복해질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플라톤의 사주덕을 신과의 관계에서 새롭게 해석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덕을 구현하고 행복해지려면 계시를 통해 신의 은총을 받아야만 한다. 신은 이성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을 초월한 존재이며, 실존을 통해 만나야 하는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퀴나스의 사상

고대 그리스 사상을 그리스도교에 접목한 교부 철학의 뒤를 이어, 중세 후기에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논증하며 설명하려는 스콜라 철학이 등장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아퀴나스가 있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를 새롭게 설명하고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활용한다. 그는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며, 행복은 덕에 의해 실현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품성적 덕과 지성적 덕만으로는 행복에 이를 수 없으며, 믿음 · 소망 · 사랑이라는 종교적 덕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고의 행복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신과 하나가 될 때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고의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신에 대한 온전한 지식과 관조이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신앙의 권위와 신학의 영역, 계시의 힘을 강조하면서도 이성과 철학이 자율성을 지니고 진리를 탐구하는 영역도 인정하여 자연에 대한 경험적이고 이성적인 탐구가 성경과 신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그는 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신의 존재를 이성을 통해 철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하며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의 조화를 추구한다. 자연법은 법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인의 생각에서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학파로 이어진 자연법사상은 중세에 접어들어 그리스도교 사상과 결합한다. 아퀴나스가 강조한 자연법은 신이 자연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전제로 삼는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자연법은 자기 생명을 보전하려는 욕구, 종족을 지속 시키려는 욕구, 신 · 인간 · 세상을 알고자 하는 욕구,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 등과 같은 인간의 본성에 바탕을 둔다. 또한 자연법은 인간의 이성으로 인식할 수 있고,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그는 인간 사회의 실정법도 이러한 자연법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도덕적 의무와 실정법은 자연법에 기초하되, 신의 계시로 얻을 수 있는 신법이 보완되어야 바로 설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법은 궁극적으로 신의 명령인 영원법에 근원을 두므로 모든 도덕 원리와 법은 신에게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도덕적 의무와 실정법의 원리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고, 행위로써 구현해야 한다. 근대 이후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에 따라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법이 부각되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윤리와 정치사상에서 비판적으로 계승되었다. 자연법은 특히 시대와 지역에 따른 문화적 · 사상적 다양성 너머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윤리적 원칙으로 이능하였다.

 

종교 개혁과 그 이후

그리스도교는 중세 말기에 철학, 자연 과학 등의 도전에 직면하였다. 특히 교황이 면죄부를 판매하여 세속적인 권력과 부를 부당하게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루터(Luther, M., 1483~1546)는 교회의 부패한 형태를 지적하며 95개조의 반박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교황이 발행하는 면죄부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며, 예수의 가르침과 사랑을 실천해야 구원과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루토의 주장은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그는 교회의 독점적 권위를 부정하고, 교회와 성직자를 통하지 않고도 누구나 성서와 기도를 통해 신과 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이 세상에서 신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종교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칼뱅(Calvin, J., 1509~1564)은 인간의 구원은 신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어 있다고 보고, 모든 직업은 신이 부여한 소명이라는 직업 소명설을 바탕으로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모든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노동은 신성하며 노동으로 얻은 것은 모두 신의 선물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이는 종교 개혁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근대 산업화 사회의 책임과 성실이라는 윤리적인 요청에 부응하였다. 종교 개혁은 모든 인간의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고귀한 존재이며, 신의 본성을 회복한다면 선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는 그리스도교 윤리를 새롭게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 종교 개혁은 개인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며 근대 민주주의를 확립한 정치적 개혁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가는 데에도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