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의 등장 배경은?
성리학은 도덕 법칙의 인식에서 객관성을 중시하는 장점이 있지만, 지적인 탐구에만 치중하거나 이론과 실천을 분리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성리학이 관학이 되면서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지식만 탐구하거나 이론적 앎에 치우쳐 실천을 소홀히 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이처럼 학문 공부가 실천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반성으로 명대에 양명학이 등장하였다. 양명학을 창시한 왕수인은 사물에 이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본 주희와 달리 이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욕심에 가리지 않는 본래의 마음이 바로 이라고 한다. 즉 인간 본심에 있는 도덕적 마음을 떠나 도덕적 이치와 외부에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양지란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왕수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양지가 있다. 양지는 사단 가운데 시비지심과 같은 것으로, 선악과 시비를 판단하는 능력이면서도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감정을 가리키기도 한다. 양지는 성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므로, 누구나 본래부터 갖춘 양지로써 시비와 선악을 판단해서 행동으로 옮기면 도덕적 실천을 할 수 있다. 즉 성리학에서 처럼 도덕적 이치를 굳이 학문적으로 깊이 탐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사람 가운데에는 양지가 밝게 빛나는 사람이 있고, 욕심에 가려 양지가 잘 발휘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면 누구나 양지가 밝게 빛나서 올마른 판단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양명학에서는 자기 마음의 양지를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실제에서 벗어난 공부와 수양이 아니라 현실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일을 하며 마음의 사용을 제거하고 양지를 실천하는 공부를 중시한다. 양명학은 앎과 행동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강조한다. 왕수인은 "앎은 행동의 시작이고 행동은 앎의 완성이다."라고 하며 앎과 행동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양명학에서 지행합일을 강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왕수인은 지와 행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선하지 않는 생각이 일어나도 아직 행하지는 않았다고 여겨 그 생각을 억누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지행합일설에 따르면, 선하지 않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나쁜 행동의 시작이므로 그러한 생각조차 그쳐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선한 생각이 일어날때에는 그러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서 실천해야한다. 즉 생각부터 행동의 시작으로 여기는 지행합일설을 통해 도덕 법칙을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것보다 생각을 참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해서 주체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양명학의 의의는?
양명학은 도덕 판단의 근거를 외부의 권위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찾으므로 자아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또한 앎과 행동을 일치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理)를 마음에 서만 찾아 사물을 객관적으로 탐구하거나 경전을 연구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도덕 판단이 주관적으로 흘러 사회 규범을 경시할 수 있다. 아울러 본심과 욕심을 혼동하여 욕심에 따라 행동하면서 양지의 실천이라고 착각할 우려도 있다.
부모를 섬기는 경우 부모에게서 효도의 이치를 구할수 없고, 임금을 섬기는 경우 임금에게서 충성의 이치를 구할 수 없으며, 벗과 사귀고 백성을 다스리는 경우도 벗과 백성에게서 믿음과 어짊의 이치를 수할 수 없다. 모두가 다만 이 마음에 있을 뿐이니, 마음이 곧 이理다. 이 마음이 사욕에 가려지지 않은 것이 바로 천리이니, 밖에서 조금이라도 보탤 필요가 없다.
이 순수한 천리의 마음을 부모를 섬기는 데 드러 낸 것이 바로 효도이고, 임금을 섬기는 데 드러낸 것이 바로 충성이며, 벗과 사귀고 백성을 섬기는 데 드러낸 것이 바로 충성이며, 벗과 사귀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드러 낸 것이 바로 믿음과 어짊이다. 다만 이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는 데 힘쓰기만 하면 된다.
-왕수인. 전습록-